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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 Missing

2025, 일우 스페이스

이성미는 개인의 미시사에서 비롯된 고통의 기억을 작업의 단초로 삼으며, 이를 주로 연약한 재료들의 연마와 응축을 통해 조형해

왔다. 그의 작업에서 재료와 과정은 그 자체로 내용과 조응하며 중요한 위치를 점유한다. 작가는 깨진 자동차 유리 파편들과 향의

그을음 등 버려지거나 가려진 존재들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그 불온한 것들을 정성스레 채집하고 재구성한다.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유리 조각들은 타원형의 유기적 응괴로 구축되고(<Melting It, Melting Me>), 흩어지는 연기는 반투명한 상자 안의 그을음으로 각인된다(<기억의 풍경화>). 이렇듯 예측불가능한 겹으로 집결된 이성미의 조각에서는 선(zen)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깨진 유리를 닦고 접착제로 이어붙이는 지난한 손의 노동과 흩날리는 잿빛 실루엣을 붙잡고자 하는 부단한 움직임은 무상과 무아의 지경으로 자아를 견인하며, 이는 곧 무한의 장소를 창출하기에. 그 무수한 시공의 적층으로 이뤄진 형상들은 바라보는 타자 또한 명상의

세계로 침잠하도록 한다. 작가는 투과성 있는 재료로 말미암아 안에서부터 쌓여온 시간의 깊이를 가늠하게 만드는 한편, 깎여 나간 표면 너머로 기억의 지층을 비추기도 한다.

 

<덩어리 드로잉> 시리즈는 그의 기존 재료 혹은 방법론과는 대조적으로 제작된 작업이다. 앞선 두 작품이 유리와 레진, 플렉시

글래스 등 투광성의 물질을 활용해 그 막 너머로 행위자의 흔적을 읽을 수 있게하는반면,이작업은비정형의부조덩어리를 구축한 뒤 그리기와 덧대기, 삭이기를 반복하여 탈피된 표피 사이로 비선형적 제스처와 시간을 펼쳐본다. 이성미는 표면에서 깊이를, 깊이에서 표면을 가늠하게 만드는 조각들을 통해 과거 기억에 대한 상흔을 회복한다. 그리고 사라진 것들의 시간성을 물질화한 상흔의 회복은 관자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균열을 촉각적으로 체험하게 하며, 그리움과 치유의 감각을 새롭게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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