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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는 세계를 메우는 반짝이는 균열

박지형 | 디스위켄드룸 큐레이터

연약한 견고함. 희미한 선명함. 양립할 수 없을 것 처럼 보이는 형용사들은 묘연하게도 이성미의 작업에 동시에 내려앉는다. 전시

제목인 ‘블루 아워(blue hour)’는 일반적으로 어스름이 땅의 열기를 식히는 시간 혹은 어둠이 슬며시 자리를 비켜주어 여명이 떠오르는 때를 지칭한다. 그는 오랫동안 개인의 기억에 내재되어 있던 상처와 아픔을 작은 이미지의 중첩과 연결로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반면 본 전시는 같은 시공을 통과하는 다수의 삶을 포용하는 작가 시선의 점진적 확장을 보여준다. 그의 태도는 마치 움츠리고 있던

알맹이가 서서히 지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주변을 비추는 푸릇한 빛의 너그러움을 닮았다. 작은 것으로부터 넓은 가능성을 길어내고, 흔들리는 것들로부터 단단한 구조를 찾아가는 작품의 역설적 특징은 블루 아워가 내포하는 중층의 의미과 공명하며 형태를 갖추어

간다.

 

부서진 사물의 잔재나 무엇이 지나간 곳에 남은 흔적, 얇고 투명한 빛깔은 그의 작업을 지탱하는 일관된 조건 중 하나이다. 일상의

가장자리에서 마주친 부스러기 앞에서 그는 언젠가 직접 겪었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되새긴다. 이후 흩어진 조각을 한데 모아 쌓아 올리거나 얇은 표피에 다시금 균열을 내는 행위는 기억의 공백을 메꾸고 감정을 정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둥그르슴하게

뭉쳐진 꿈의 한 단락, 평범한 아침 마주했던 안개의 온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연기의 움직임은 기화되기보다 그의 창작안에서 윤회하며 독자적인 조형성을 획득해간다. 간직하고 싶은 장면과 지워내고 싶은 순간은 한데 뒤엉겨 촉각적인 실체가 된다. 요컨대 각 작품은

일종의 사후적 증언이자 현재로 이어지는 신체의 감각을 소성한 결과물이다. 이제 찬찬히 작품을 따라가며 그의 조형 언어가 어떻게

공통의 이야기로 넓혀져 가는지 살펴보자.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될 것은 아마도 높은 층고에 매달려 아래로 내려오는 옅은 푸른빛의 설치 작품일 것이다.

<구름(클라우드 나인)>은 DMZ 지역에 설치된 철망을 투명한 레진으로 캐스팅하고 이를 일일이 매달아 구름을 닮은 비정형의

형상으로 엮어낸 것이다. 이는 멀리서 보면 공간의 여백에 은은한 색의 막을 씌워놓은 것 같지만 실은 길이와 크기가 제각각인 모듈이 미세하게 엇갈리며 군집해있는 모습이다. 서로의 틈 사이로 산란하는 빛은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함께 움직이며 일렁인다. 공간을

완전히 점유하지도, 소멸하지도 않은 채로 떠있는 조각은 마치 이미 사라진 무언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두 지리적 경계를 공고히 하던 사물의 기능은 공중에 떠오른 파편들 사이에서 상징적으로 무화된다. 한편 <덩어리 드로잉>과 <돌이 되기 위한 수행>은 회화적 기법과 조각적 태도가 교차하는 작품이다. 각 대상은 모두 철망과 거즈, 우레탄, 석고 등 여러 형질의 재료를 겹쳐 울퉁불퉁한

구조를 만드는 일을 전제로 한다. 여기에 불규칙한 표면 위에 안료를 바르거나 뿌려 우연의 자국을 남기고, 찢어지기 쉬운 은박을 씌운 뒤 이를 다시 긁고 문질러내는 지난한 그리기의 과정이 더해진다. 제법 두께와 규모가 있는 부조 형태의 덩어리는 앞으로 전진하거나 움푹 패인 벽이 되고, 상대적으로 작은 부분들은 분출되는 화산에서 떨어져 나온 부산물처럼 공간 곳곳에 놓인다. 군집을 이루는

요소들은 명상이나 수련과도 같은 그의 조형 실험의 과정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입체 작업과 함께 눈여겨 볼 것은 그의 상상력의 근간을 이루는 드로잉이다. 실제 작업실에는 세상에 내보이지 않은 무수히 많은

드로잉이 빼곡히 쌓여있었다. 마치 매일 일어나 몸을 움직이고 어제로부터 연결된 오늘을 살아가는 호흡처럼, 각 이미지는 비슷한 듯 차이를 만들며 그의 일상 틈바귀에서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드로잉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모양은 단연 동그라미이다.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표상하는 기호인 원은 <The Mediation in Paris>처럼 서로 겹쳐 구름이 되기도, <아침의 수행> 연작처럼 모난 곳이

없는 뭉쳐진 비정형의 형태가 되며 변주를 이어간다. 이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얇은 색의 선과 묽은 안료가 촘촘히 모여 완성된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그의 다른 작품이 그러했던 것처럼 작은 개체들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힘을 보태어 보다 큰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 화면을 간헐적으로 덮는 불투명한 종이막은 주변의 조도에 따라 그려진 것을 어렴풋이 감추거나 은연중에

드러내어, 삶에서 잊혀진 것과 지워진 것들을 불현듯 상기시킨다.

 

무너질 틈이 없이 보이던 현실은 바이러스의 이동, 네트워크 오류와 같은 비가시적인 시스템의 오작동 앞에서 너무나 힘없이 균열을

보인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마치 유령처럼 떠다니는 쪼개진 자아들은 어디에서도 정착하고 연대할 기착지를 찾지 못한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이 나만의 것이 아니며 더 많은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모종의 감각임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삶의 온기가 부족한

어둠을 부둥켜안고 미래를 기다리는 시간을 예술로 채워나간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업은 우리가 꿈꾸는 세계를 향한 태도를 내재한다. 찢어지고 구멍이 난 틈을 메꾸는 느린 몸의 움직임. 흐린 현존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눈과 귀. 이성미는 소란스러운 세계에서

침묵하는 것들에 몰입하며 반복적으로 그들을 호명한다. 작은 입자들의 호혜적 관계망 속에서 완성되는 그의 예술은 지금도 나긋이

반짝이며, 치유의 매듭을 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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