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젊은 조각가 (2012, 김종영미술관) 전시 서문

이지희 (미술비평, 큐레이터)

김종영미술관에서는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매년 '올해의  젊은 조각가전'을 개최하고  있다.  공모를  통해  지원한  많은  작가들  가운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2012년의 수상 작가는 이성미(1977), 정혜련(1977), 최종희(1971)다.

 

이성미는 10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회화와 조각을 전공하고, 볼티모어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젊은 작가로, 이번 전시는 그간의 작업을 국내에 알리는 첫 번째 전시다. 그녀는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부터 현재까지 투명하거나, 가변적인 물질을 재료로 이용해오고 있다.  2004년에  제작한  <Diary  of  fall  04>(2004)는 버려진 집에서 가져온 깨진 유리와 거울을 이용해 만든 작품이다. 유리는 부서지기 쉽지만 아름답고 투명한 물질로, 이를 작업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전문  유리  커팅법을 배워야 했다.  작가는 다소 위험한  유리커팅을 이용한 작업에 몰두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복잡했던 내면이 치유(healing)되감을 느꼈다. 이러한  작업  태도와  테마-버려진  유리를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작가가  받은  치유-는 어린 시절을 낯선 땅에서 홀로 견디며, 작가의 말마따나 '불안'을 일상처럼 받아들여야했던 자신의 삶의 반영이자, 무/의식의 심연을 적절히 보여주는 것이다. 감성적인 접근일지 모르겠지만, '치유'를 위해서는 '상처'가 필요하고,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주체가 '감정'을 느끼는 대상일 때 가능하다. 바로 나, 당신, 우리 모두처럼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작업을 통해 작가가 받은 치유는 작품을 매개로 관객에게 전달되며, 작품이 내포하는 의미는 점차 심화된다. 그리고 작가가 유리 커팅이라는, 위험할 뿐더러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통해 '치유'를받았다는 사실은, 상처 받은 내면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분명 어떤 '과정(노력)'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가치를 환기한다.

이후 작가는 깨진 유리와  플렉시글라스(plexiglass)를  이용한 작업<Re-Birth)>(2005)이나,  부드러운  케이블  타이를  이용한  유기체  모양의  오브제<Yawning  Dream)>(2008)를 선보이기도 하고, 빛<Light shower>(2005),    <Untitled(for Broken heart)>(2005) 연기<White air>(2006-2008), <Evanescence>(2007>처럼 형태가 없거나 자유로운 물질을 이용해 작업을 전개해 나간다. 빛과 연기는 기본적인 물리량의 하나이며, 명확한 존재로 자신을 증명하지만, 물리적 무게는 없는 일종의 에너지이다. 작가가 선택한 대부분의 재료들은 이처럼 투명하고 가변적이며, 존재와 부재의 경계에 있는 물질로, 이러한 물질들은 그 대상이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작가는 이것이  미국에서는 한국인으로 보이고, 한국에서는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보이는 자신에 대한 인식과 상황적 특수성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작가의 사유와 재료의 선택을 미술사적 맥락 안으로 끌어들이면, 1960년대 미니멀리즘 조각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  혹은  포스트  미니멀리즘Post-Minimalism 조각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작가였던 에바 헤세Eva Hesse, 1936~1970는 천, 노끈, 밧줄, 라텍스, 유리섬유 등 부드럽고 유연한 재료들을 사용하여 표현주의적 경향이 강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는 1960년대 미니멀리즘 조각이 보여주던  형식주의적  체계의  경직성과 순수하고  정서적인  표현의 결핍을 넘어,  이성적   논리보다 선행되는  자유로운 감각과 본능적이고  내적인 표현을 추구하던  헤세의  지향을  보여주는 것 이었다. 이러한 그녀의 사고는 조각 이전에 회화를 전공하며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의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영향을 받았던 초기 작품세계와도 연관성을 지닌다. 이성미가 헤세처럼 먼저 회화를 전공하다가 조각을 시작한 것은 물론 우연이겠지만, 두 작가가 추구하던 작품세계와 조형적 특징들은 서로 자연스럽게 조응된다.

이성미의 <Melting it, Melting me>(2009)나 <Flower 4 U>(2010)는 유리와 합성 수지의  일종인  플렉시  글라스를  이용해  만든  작업이다.  전자의  작업은  투명하면서도 속이 차 있는 것 같은 생물형태적인biomorphic  모양으로, 마치 어떤 덩어리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듯한 형태를 띄고 있으며, 거친 표면이 드러난다. 후자의 작업은 만개한 꽃의 모양으로 형태가 있지만, 크기가 모두 다르고 우둘투둘한 질감이 느껴지는 투명한 꽃잎은 작가의 손길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이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물질을 이용해 재료 자체가 지닌 자연스러운 성질이 드러나도록 하거나, 어떤 형태를 만들더라도 엄격하거나 딱딱하지 않고 작가의 수공예적 손길이 드러나도록 하는 표현은 에바 헤세의 작품이 보여주는 조형적 특징과 상응한다. 에바 헤세는 모든 작품을 일일이 손으로 만들며, 물질 자체가 지닌 성질을 드러내고자 라텍스나 천, 고무, 유리섬유 등을 사용하였다. 유연한 재료들은 작업 과정에서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작업 과정에서 작가의 감정이나 심리, 상황 등이 투영되기 쉬웠고, 이렇게 완성된 형태들은 작가의 주관과 본능을 깊이 반영하게 된

다. 이성미 역시 모든 작업을 일일이 손으로 만들며, '만드는 과정'을 중시했는데, 이는 조형적으로  재료  자체가 지닌 성질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드러나도록 함은 물론, 작업 과정을 명상과 자기 수행으로 삼고자 하는 그녀의 심리와 사유를 깊이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20여년을 활동해온 작가는 작년 한국으로 삶의 무대를 옮겼다. 그간 뉴욕에서 보여준 작업들과 앞으로 한국에서 보여줄 작업이 어떻게 달라질지 사뭇 기대되는데, 작가는 공간이 달라져도 사람이 달라지지 않으니 작업 경향에  큰 변화가  없더라고 말한다. 이는 작가가 환경이나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받고, 이방인으로서 받은  상처를 작업을 통해 치유했던 초기의 마음상태에서 많이 여유로워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삶을 살아가며 환경보다 자신의 내적인 힘(긍정적 에너지)에 집중하며, 새로운 환경도 수용할 수 있다는 열린 시각을 갖게 됐음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는 그간의 작업을 보여주는 그녀의 작품 4점이 신관 사미루의 3전시실에 설치된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를 우리 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열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이 전시를 통해 관객은 작가가 지닌 깊은 사유와 풍부하고 감각적인 표현의 작품들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