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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My Door

2010, 가나아트 뉴욕

 

Infinity-with-in-between

올해 들어 유난히 밝았던 월요일 오후 나는 봄날의 따뜻한 공기와 간간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인상 깊었던 Bushwick에 위치한 이성미 작가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작업실의 문이 열리고 하얀 햇살을 받으며 나를 맞이하던 그녀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후 몇층의 계단을 지나 이번 개인전 Behind My Door 의 새 작품들이 있는 작업실로 들어섰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한 대부분의 작품을 지난해에 완성하였다. 그 해는 그녀의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와 친한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티베트 문화 속에서 죽음이 갖는 의미에 관하여 탐구하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녀의 작품활동은 지금까지 받아왔던 정규 미술교육과 가족의 불교적 가치관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이번에 선보이는 슬픔을 머금은 애가<哀歌> 적 작품들은 불교의 바르도 개념을 빌어, 죽음으로부터 내세를 아우르는 여정의 사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인 슬픔이 투영된 이번 작품들은 죽음과 상실에 대한 절절한 감정마저도 따뜻하게 포용하고 있다. 투명하거나 하얀 레진, 길거리에서 주워서 재활용된 부서진 유리조각과 스티로폼, 구슬들, 아크릴판, 유색 잉크, 합판, 플라스틱, 닭장과 향의 그을음 등으로 만들어진 그녀의 다원적 작업의 지속적인 주제는 바르도적 틈과 일맥상통한 중간적 그리고 경계선적 개념이다. 이 재료들은 마치 보석과 버려진 잔해의 중간에 있는 것처럼 단순히 한 범주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듯 하다. 이들은 나무를 조각하거나, 향을 태우며, 수백개의 유리구슬이나 부서진 자동차 유리조각을 모아 붙이고, 레진을 돌려가며 부어서 만든 것과 같은 반복적이고 명상적인 제작 과정을 거쳐서 재탄생되어 드로잉과 페인팅, 페인팅과 조각, 드로잉과 조각사이의 영역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마치 조각적 드로잉, 퍼포먼스적 페인팅 혹은 드로잉으로 만들어진 페인팅, 페인팅으로부터 나온 조각과 같은 식의 혼성적 설명을 가능케 만든다. 여기서 향을 이용한 두 작품의 경우, 결코 잡힐 수 없는 연기를 잡아내려는 그녀의 작가적 열망과 함께 지극히 개인적인 불교적 수행을 작품을 통해서 대중들과 교감하는 일종의 교두보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와 관련된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면, 마치 물방울이 떨어진 모습이 길게 늘어난 것과 같은 모양이나, 혹은 꽃, 크리스탈 그리고 종유석과 같은 자연의 형태를 닮아있기도 하고, 검은 형태 속에서 경이적인 확장이나 우주적 거대함을 연상케 하는 작업들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가장 초기작은 최근에 작가가 겪은 비극 이전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세 개가 하나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흑백사진 White Air 는 2002년부터 작가가 만들어 온 아크릴 박스에 향 연기를 담아 만든 The Journey (Day 3), That Moment, That Day 와 같은 작품들과는 시각적인 대조를 이룬다. 또한 이 사진 작업은, 연기를 담아 만들어낸 작품들과는 달리, 매일 작가의 작업실 창 밖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풍경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사진은 형체도 없이, 금방 소멸하는 공기와도 같이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담아내고 있는데, 이는 작가와 작업실 유리창 밖의 고요한 폭풍과의 거리감을 보다 돈독하게 해주고 있다. 개념적 사진작업에 가까운 이 작품에서 연속적으로 보여지는 솟아오르는 구름과 같은 연기, 혹은 수증기들은 마치 건물들을 잠시하고 지우고 있는 듯이 보인다. 비극적이지만 이미 예견된 죽음의 운명과, 삶과 죽음의 순환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을 오히려 아름답게 사진에 담아내고 있다. 또한, 어떻게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산업이 파괴를 동시에 야기시키는지도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작가의 존재감 및 감정과 맞물려 후기 미니멀리스트의 색깔, 모양, 형태에서 보여지는 창조적 자극의 경향을 내포한다. 예를 들어 조각작품 Flower 4 U 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꽃을 놓아두지 못했던 작가의 안타까운 심정의 직접적인 표현인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는 이 작품의 꽃잎들은 투명한 레진으로 각각의 다른 잎의 모양이 조심스레 고무 주형틀로 떠져서 줄기 없이 샹들리에 모양의 활짝 핀 꽃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마치 공기 중에 가벼이 부유하는 듯 아름답게 만개한 반투명의 꽃들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연꽃은 불교적 상징으로 순수함과 속세와의 단절의 의미로 잘 알려져 있으며, 연꽃 위에 앉아있는 부처상의 형태로도 많이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작가의 이 꽃들은, 애도의 기간이나 기원의 의미로 절에서 종이로 만든 연등을 극적으로 확대하여 만든 것이기도 하다.

 

커다란 형태의 전도된 촛불처럼 보이는 버섯모양의 Crying for You 는 슬픔의 무게를 시각화하여 잘 보여주고 있다. 매달려있는 형태에서 눈물을 흘리는 듯 뚝뚝 떨어지는 모양의 하얀색 레진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작가의 애도의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Crying for You 의 레진이 흘러내림으로 인해 탄생된, 이 작품과 짝을 이루는 Painting by Sculpture (Crying for You) 의 제작과정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이렇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두 작품은 작가 고유의 순회의 길로 보여진다. 또한 작가의 슬픔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낸 Tear Stain (Frozen River)와 Tear Stain (Pillowcase) 은 흐느껴 우는 것이 정신적, 육체적 정화의 경험임을 주목하게 만든다.

 

The Last Gaze 와 더불어 하얀색이 이성미 작가의 대다수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시원한 바다색의 Melting #2 와 #4 가 유독 두드러져 보인다. 어떤 문화에서는 전통적으로 흰색은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곳에게는 순수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흰색은 연민을 의미하는 한국적 보살인 관음이며, 애도를 인지하고, 자비의 여신이기도 한 산스크리트로 Avalokitesvara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울한 하얀색과 대조적으로, 검정색 유화물감, 하얀 레진,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이 투명한 레진에 덮혀 봉인된 듯 보이는 구슬들로 진줏빛 어둠을 만들어내고 있는 Starry Night With U (#44)는 관객들로 하여금 희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듯 하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또 다시한번 작업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White Air 에서와 달리 보다 심도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향의 연기와 기도로 눈이 부신 천국을 엿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진 작가의 최근 작품들은 영생의 중개자이며, 슬픔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영원함 속에 존재하는 일시적인 감정상태임을 일깨워 준다. 만약 바르도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존재하는 중음적 공간이자 틈이라면, 우리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사랑하며, 인간사의 수많은 복잡함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 Behind My Door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동시에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해주리라 생각된다.

 

2010년 4월

에드윈 라모란

 

에드윈 라모란은 캘리포니아 팜스프링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대학에서 미술사 석사를 마쳤으며, 1994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현재 뉴저지에 있는 뉴왁 현대미술 센터, Aljira의 전시 및 프로그램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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